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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
K팝이 'K'라는 국적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다움'의 희석이 아닌 융합 문화로서의 포용성과 확장성이 강화되는 현상이라는 진단이다.
26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K팝의 이 같은 잠재력에 주목했다. 10년 뒤 약 2000억 달러(약 286조 4000억 원) 규모의 세계 음악 시장에서,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비롯된 힙합이 고유의 가치를 유지하며 확장했듯 K팝 역시 유사한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하이브(HYBE) 창업자 방시혁 의장이 K팝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K'를 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온 점에 주목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방 의장의 주장이 K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장르의 포용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와 경쟁 레이블들이 검증된 한국식 시스템을 세계로 수출하는 현상은 K팝의 식민지화가 아닌 정반대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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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브 방시혁 의장 |
K-컬처 산업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 성장이 제한된 상황에서 필연적 선택이 됐다. 5000만 명의 국내 팬을 넘어 80억 명의 잠재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당위성이 확고하다. 강력한 국제 수요는 이미 수치로 입증된다.
K팝을 포함한 음악, 뷰티, 푸드, 패션을 아우르는 한국 문화 수출액은 지난해 310억 달러(약 44조 3800억 원)를 넘어섰다. 이 같은 규모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해외 판매액의 절반에 육박한다.
넷플릭스(Netflix)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구독자의 80% 이상이 K-콘텐츠를 시청하고 최근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와 CJ ENM의 공동 제작 파트너십이 체결되는 등 산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제적 위상도 달라졌다. 피보탈 이코노믹스(Pivotal Economics)는 한국이 수십 년간 음악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하는 미국, 영국, 스웨덴에 이어 네 번째 국가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유튜브에서는 한국인이 해외 뮤지션을 1명 구독할 때 17명의 외국 팬이 한국 아티스트를 시청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K팝의 음악 소비 지형도는 이미 국경을 넘어섰다. 팬덤 데이터는 한국보다 해외에 훨씬 더 많은 팬이 존재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음악 산업 분석 플랫폼 차트메트릭(Chartmetric)에 따르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팔로워 기준 K팝 팬 비중이 가장 큰 국가는 인도네시아(19%)로 집계됐다. 미국(10%)과 필리핀(9%)이 뒤를 이었으며, 정작 한국은 7%로 4위에 머물렀다. 태국(7%)과 브라질(6%)이 한국의 뒤를 이었다.
K팝의 정체성 자체가 '융합'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서울 기반 아티스트·레이블 서비스 에이전시 DFSB 콜렉티브의 버니 조 대표는 현재 K팝이 '메이드 비욘드 코리아(made beyond Korea)'의 순간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콘텐츠는 한국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를 만드는 손이 반드시 한국인이거나 한국 여권을 소지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룹 블랙핑크는 대표적인 사례다. 태국 출신인 리사, 서울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거주한 제니, 뉴질랜드 태생으로 호주에서 자란 로제 등 다국적 멤버가 포진했으며, 지수만이 유일하게 한국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지난해 발매된 K팝 싱글의 절반이 영어 가사를 포함하는 등 콘텐츠 자체도 북미의 관점과 한국의 영혼이 결합한 '하이브리드(hybrid)'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K'라는 국적 표기는 지워질 수 있어도 K팝을 성공시킨 '한국식 시스템'은 오히려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은 K팝의 특권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