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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9주년 기획]1000만 ‘착시’에 가려진 위기… K무비, 결국 재미있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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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11. 10. 17:09

한국영화 제2도약 해법은
'파묘·범죄도시' 두 편만 초대박 흥행
상반기 200만 관객 韓영화 한편도 없어
200억 대작 이선균 주연 '탈출'도 쓴맛
"韓영화, OTT로 봐도 돼" 인식 달라져
콘텐츠·영상미로 극장 찾게 만들어야
티켓값 조정 등 영진위 역할도 힘실려
한국 영화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국 영화는 늘 위기였다'는 낙관론도 여전히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매우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게 많은 영화인들의 고백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득세에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경기 침체의 여파마저 겹치기 시작하면서 작품 개발부터 극장 상영까지 전통적인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이 서서히 붕괴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위기를 이겨내려면 뼈를 깎는 수준의 기초 체질 개선과 달라진 산업 환경에 걸맞은 법·제도 정비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착시 효과에 속지 말고 모두 바꿔라

올 상반기에만 '파묘'와 '범죄도시4' 등 두 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 기간 개봉했던 한국영화들의 전체 매출액은 3583억 원으로,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3929억원)의 91.2%를 기록했다. 매출액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거의 돌아간 수치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8%(1460억원) 늘어난 수준이며, 관객수 점유율 또한 59.3%로 전년 대비 23.2%포인트나 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수치가 일종의 '착시 효과'를 안겨준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하면 매출액 200억원 혹은 200만 관객을 넘긴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극소수의 '초대박' 흥행작 말고는 완성도의 높고 낮음 혹은 예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개봉작들 대부분이 관객들부터 외면당하는 '흥행 양극화' 현상이 매우 심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일례로 올 여름 개봉작들 가운데 유일한 고예산 작품으로 2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비교적 탄탄한 만듦새에도 손익분기점인 400만 관객에 아주 턱없이 모자란 68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한국 영화 산업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해온 영화 제작자 A씨는 "현재의 위기는 극장용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인해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 그동안 어렵게 축적했던 영화 제작의 노하우가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라며 "극장용 영화의 개념부터 극장이 영화를 제공하는 방식까지 모든 걸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가성비'와 '시심비'를 모두 중시 여기는 관객들을 위해 심야 시간대에 영화 한 편의 관람료를 받고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물 전체를 상영하거나, 아니면 드라마 한 편 수준으로 러닝타임을 줄이는 대신 관람료를 반값 이하로 내리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늦었지만 초심과 원칙으로 돌아가라

결국 이 모든 상황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만한 한국 영화가 많지 않아 벌어졌다는 걸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게 영화인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떠난 관객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톱스타의 출연과 트렌드를 좇아가는 감각적인 기획 등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큰 스크린으로 감상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영상미로 무장한 한국 영화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영화 유튜버 라이너와 함께한 대담집 '10개의 시점으로 본 영화감상법'에서 "대중이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는 예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 영화는 나중에 천천히 OTT로 봐도 괜찮다고 여기는 반면, 전편에 이어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아바타: 물의 길'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같은 작품들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듯싶다"면서 "제작자들이 천편일률적이고 습관적인 접근 방식을 벗어나, 극장 관람을 필수로 받아들이게 하는 작품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철승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관객들이 극장에서 볼 영화를 고를 때 주연 배우들의 이름값에 좌우되지 않는 경향이 최근 들어 더욱 강해졌다는 점에서 제작자들은 톱스타 캐스팅에 무리하게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대신 그 시간에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 발굴에 더욱 힘써야 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물론 원천 소스로 각광받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까지 기획 단계부터 더 많이 챙기고 더 넓게 훑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영진위의 역할, 그 어느 때보다 중요

문제는 영화인들이 심기일전해 영화를 제 아무리 잘 만들어도 법·제도 정비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란 점이다. 극장 측의 무리한 관람료 인상을 막는 업계의 자율 협약 도출과 영화가 극장 상영을 끝내고 OTT와 인터넷TV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소요 기간을 뜻하는 '홀드백'의 법제화, 스크린 상한제와 최소 상영 보장 등과 같은 관련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 다른 영화 제작자 B씨는 "형편이 어려워진 이유도 있지만 영화인들부터가 티켓값이 비싸 극장에 가기를 부담스러워한다면 말 다 한 것 아닌가"라며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감소했지만 예전 그대로인 고정비용으로 힘들어하는 복합상영관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홀드백' 법제화와 관람료 인상 등 각자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일수록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같은 공적 기구의 적극적인 주도하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상준 영진위 위원장은 "(영화계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중간 규모의 상업 영화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우선 하겠다"면서 "티켓 객단가 조정과 '홀드백' 법제화, 스크린 독과점 등은 제작사, 영화관, 투자배급사 등의 이해 관계가 아주 다른 상황에서 영진위가 정책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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