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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킨슨의 법칙 입증하는 조직 비대화
무엇보다 눈에 띄는 문제는 비효율을 초래하는 조직 팽창이다. 합참은 이번 개편으로 기존 전력기획부를 전력본부로, 작전기획부를 전략본부로 이동시키는 본부 체계를 늘리려 한다. 작전 기획부서를 전략본부로 옮기고, 전력기획부를 아예 별도 본부로 승격시키는 구상은 얼핏 그럴듯해 보여도, 하나의 본부를 둘로 쪼개 또 하나의 거대 조직을 만드는 셈이다. 이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슬림한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는 조직 관리의 기본원칙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영국의 경영학자 파킨슨의 지적처럼 관료조직은 일의 실제 양과 무관하게 스스로 덩치를 키우는 속성을 보인다. 실제로 공무원 수가 업무량과 관계없이 매년 약 5%씩 증가하는 현상을 '파킨슨 법칙'이라고 하는데 군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합참 개편안도 또 하나의 본부를 신설하려 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뻔하다. 지휘계통이 더 복잡해지고 의사소통 계층이 늘어나, '일은 늘었는데 성과는 제자리'일 것이다. 정작 전투현장에서 필요한 기민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은 떨어지고, 책상 위 조직도만 비대해질 우려가 크다.
◇ 밀실 결정과 해군력 편중 개편의 함정
둘째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의 편향성과 불투명성이다. 이번 합참 조직개편은 충분한 공개 토의나 외부 전문가 검토 없이 급조된 인상을 준다. 국방부는 합참에서 1년간 검토했다고 하지만 해당 직제 개정안은 단 10여 일 남짓한 입법예고 기간만 거쳐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올해 2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 사안이 질의됐을 때도, 합참의장은 재검토한다는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고 실질적인 공론화는 없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만 팽배했다. 결국 국민과 국회의 충분한 논의 없이 합참 내부 논의로 결정한 셈이다. 이러한 절차적 결함은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개편 방향에 특정 군(軍)의 이해관계가 짙게 반영된 듯하다는 점이다. 합참의 작전기획부를 전략본부로 이관하고 전력기획부를 독립본부로 격상하는 구상은 겉보기에는 합동성을 강화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해군력 중심의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 합참의장이 10년 만에 해군 출신이고, 전력본부 신설로 향후 해군이 장악할 전략·전력 분야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개편은 해양력 증대가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해군 중심 사고가 반영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합참 조직은 말 그대로 합동성을 최우선해야 함에도, 특정 군 위주의 방향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진다면 이는 합동성 약화와 군 내부의 불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이 과연 합참에 새로운 본부 하나 더 만드는 것이었는가? 사실 그 전쟁이 가르쳐준 것은 신속한 결단과 유연한 전력투입, 그리고 민첩한 첨단기술 적용의 중요성이다. 그러나 합참은 이러한 교훈을 무시한 채, 관료적 자리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 대신 엉뚱한 약을 남용하며 자기 병원을 키우는 꼴이 된다.
◇ 국방개혁 역행하는 졸속행정
결과적으로 이번 합참 조직개편안은 국민 안전과 국방 효율을 높이기는커녕, 국방개혁의 대원칙에 역행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문민 통제와 투명한 정책 결정은 민주국가 군대 운영의 근간인데, 자체행정으로 국회의 견제를 피해가며 졸속으로 추진하는 행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국방개혁 2.0과 국방혁신 4.0 등에서 일관되게 추구해 온 간소화되고 기민한 지휘구조 확립이라는 목표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방향이다. 군사 조직의 최우선 가치는 실전 수행능력인데, 이번 개편안은 탁상공론적 조직논리에 매몰되어 그 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냈다. 이러한 무리한 개편을 강행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작 유사시 지휘혼선과 대응지연 및 책임전가로 안보 공백이 생길 수 있고, 평시에는 불필요한 조직 운영비용과 갈등만 늘어날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권고와 국민적 논의를 철저히 무시한 이번 합참 조직비대화 시도는 재고돼야 한다. 진정 안보환경 변화를 걱정한다면, 보여주기 식 조직확대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전력강화와 투명한 의사결정구조 확립에 초점을 맞추는 게 순리다. 지금까지 발생한 문제는 인력을 제대로 양성하지 않은 탓이고 합참의장의 지휘관의도가 명징하게 반영되지 못한 까닭이지 기획체계와 전력건설 자체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은 합참이 '합동'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기를 원하지,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구태를 반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번 졸속 개편안이 철회되고, 국방정책이 본래의 합리성과 합동성 원칙 위에 바로 서길 촉구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