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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오'를 관람하기 위해 처음 방문한 부산콘서트홀은 여러 면에서 탄성이 나왔다. 파도를 헤치는 배를 형상화했다는 외관의 콘서트홀은 거슬림 없이 시민공원 안에 자리 잡았고, 숲속 공연장이라는 별칭답게 극장 안에서 내다보이는 공원의 오후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빈 야드 스타일로 설계된 공연장 내부는 같은 조건의 롯데콘서트홀보다 완만했으며 여유로워 보였다.
부산콘서트홀은 개관을 기념하는 마지막 공연으로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선택했다. 이미 첫 공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인 것에 호응한 피날레였다. 부산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의 초대 예술감독을 맡은 정명훈 지휘자는 인류를 향한 베토벤의 메시지를 기리고자 한다고 했다. 베토벤의 작품에 흐르는 인류애야말로 정명훈 지휘자가 몸소 체험한 문화예술의 힘이라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사랑의 승리를 노래하는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는 이 뜻깊은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클래식 부산을 향한 웅대한 지향이 콘서트홀에 그치지 않고, 2027년 완공될 오페라하우스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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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피델리오'를 위해 작곡한 4개의 서곡 중 이날 연주된 곡은 '레오노레 3번'이었다. 사실 이날 정명훈과 APO가 들려준 15분 남짓한 이 서곡만으로도 공연장을 찾은 보람이 있었다. 단정하고 정갈하게 시작해 극적인 고양감으로 이끄는 정명훈 특유의 스타일은 변함없는 신뢰를 줬다. APO의 연주는 강한 박력이나 뚝심은 부족했지만, 전반적인 음색이 조화롭고 단아했다. 낭만주의의 문을 연 베토벤보다는 고전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베토벤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사적 개관 공연에 참여한다는 영예로움은 있지만 이제 막 개관한 콘서트홀은 음향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로, 스스로 소리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악가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무대다. 그럼에도 이날 성악가들은 대부분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다. 자키노 역의 테너 손지훈, 마르첼리네를 노래한 소프라노 박소영, 돈 페르난도 역의 바리톤 이동환 등 우리 성악가들은 탄탄한 발성과 표현력으로 생기를 불어넣었고, 로코 역의 베이스 알베르트 페산도르퍼와 돈 피차로를 맡은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은 중후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작품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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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페라의 완성도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에서 크게 올라갔다. 합창은 이 작품에서 상당히 비중이 큰 부분인데, 국립합창단과 부산시립합창단이 함께 한 합창단은 콘서트 오페라라는 제약에도 적극적인 연기와 빼어난 연주로 큰 감동을 줬다. 어떤 연주단체이건 지닌 장점을 찾아내 극대화하는 정명훈 지휘자의 역량은 이번에도 발휘됐다.
방금 마개를 연 포도주처럼, 부산콘서트홀의 음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당장 큰 문제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콘서트홀의 출발은 여러모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은 예술감독의 역량에 기대어 서서히 나갈지라도, 언젠가 혼자 힘으로 우뚝 서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때야 비로소 클래식 부산은 완성될 것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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