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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장관, 하노이서 ‘전쟁 유물’ 반환…베트남에 ‘무기 세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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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11. 03. 08:10

VIETNAM-US-DIPLOMACY <YONHAP NO-7031> (AFP)
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판 반 장 베트남 국방장관(오른쪽)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왼쪽)이 악수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를 찾았다. 러시아의 오랜 무기 텃밭이었던 베트남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양국은 더 깊은 군사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C-130 수송기와 치누크 헬리콥터 등 미국산 무기 공급을 위한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헤그세스 장관의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의 미묘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무기 8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해왔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무기의 성능과 공급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새로운 파트너를 모색해왔다.

미국은 이 틈을 파고들고 있지만 베트남 역시 '줄타기 외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또 럼 공산당 서기장이 20년 만에 북한을 전격 방문하고, 러시아로부터 40대의 Su-35 전투기 구매를 추진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응우옌 칵 장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방문연구원은 "베트남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속에서 '헤징(위험 분산)'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헤그세스 장관의 이번 방문은 양국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시작됐다. 그는 이날 판 반 장 베트남 국방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노획했던 가죽 상자·벨트·작은 칼 등 베트남 병사의 유품을 직접 전달했다. 50년 전 적이었던 양국이 이제는 전쟁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파트너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양국 가족이 평화를 찾도록 돕기 위해 전쟁 유품과 정보를 교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역시 이미 미국의 불발탄 제거·다이옥신 정화 사업 등을 지원받는 동시에 미군 실종자 유해 994구를 송환해 주는 등 '전쟁 유산 극복'을 양국 관계의 핵심 기반으로 삼아왔다.

장 연구원은 "전쟁 유산 협력은 더 깊은 국방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라며 "미국에게는 장기적인 책임과 선의를, 베트남에게는 과거의 적과 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헤그세스 장관이 보낸 화해의 제스처 이후 이어진 본론은 '무기 공급'이었다. 로이터는 복수의 베트남 소식통을통해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가 베트남의 무기 수입선 다변화라고 보도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록히드마틴의 C-130 헤라클레스 군용 수송기 구매 건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S-92 및 보잉의 치누크 헬리콥터 공급 문제도 거론됐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베트남에선 지난해 공안 기관지가 하노이 인근에 개발 중인 신공항이 CH-47D 치누크 헬기 및 다른 기종들의 운용에 적합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어 구매 가능성이 높게 점쳐져 왔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은 베트남 해안경비대에 경비함 3척과 T-6 훈련기 12대 중 3대를 이미 인도했다"며 "미국은 이러한 프로젝트와 그 이상을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히며 추가적인 무기 공급 의사를 분명히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또 럼 공산당 서기장과 르엉 끄엉 국가주석 등 베트남 최고 지도부를 잇달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 지도부는 미국의 협력 의지를 환영하면서도 분명한 조건을 내세웠다.

럼 서기장은 "베트남은 미국을 항상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 간주한다"면서도, "다이옥신 정화·불발탄 제거·전쟁 피해 장애인 지원·베트남 실종 열사 유해 발굴 등 전쟁 유산 극복 분야에서 미국이 협력을 강화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미래의 군사 협력을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 해결이라는 기반이 더 튼튼해야 한다는 베트남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르엉 끄엉 국가주석 역시 베트남의 '4불(不)' 국방 원칙(△군사동맹 불참 △타국 견제 불참 △외국 군사기지 불허 △무력 사용 또는 위협 불허)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일방적으로 편입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대나무 외교'의 균형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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