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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헌법재판소의 자승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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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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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을 지나치리만치 조급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사회적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헌재가 내부의 '타임 테이블'에 따라 작정하고 서두르는 듯한 모양새를 노출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를 테면 형사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한 것은 헌재 조급성의 방증이기도 하다.

피의자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아무런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술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제아무리 인권이 신장됐다고 하더라도 강압적 수사의 여지는 여전하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검찰 조서를 뒤집는 진술이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 또 그래야 한다. 피의자는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검찰의 조서와 변호사의 변론, 피의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진실을 최대한 파악하고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재판부의 존재 이유다. 증인들의 진술이 다르고 따져볼 게 많을 때 더 그렇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하물며 대통령 탄핵소추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모종의 타임 테이블에 따라 마구 내달려서는 곤란하다.

헌재 재판관은 평생을 판사로 일해 온 정통 법률가다. 헌법적 기준을 근거로 좌로 혹은 우로 치우치지 않고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신성한 책무를 맡고 있다. 그래야 할 재판관들이 탄핵소추 심판을 서두르는 나머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비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 수호를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헌재 홈페이지에는 무궁화 외형을 담은 휘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호해주는 헌법재판소의 모습을 상징화함. 가운데 원의 흰색은 평등을, 무궁화 꽃잎의 자색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권위를 나타냄.' 그리고 상징 문양에 대해서는 '기둥은 헌법을 수호함으로써 국가의 근본을 굳게 지키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헌법재판소의 이미지를 초석과 기둥의 모습으로 표현함. 문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아가는 헌재 이미지를 빛이 확산되는 열린 문의 모습으로 표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헌재는 휘장·문양을 통해 헌재 스스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간다고도 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분명히 못을 박고 있다.

지금 헌재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계엄선포에 이은 탄핵소추 심판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탄핵에 찬성하는 쪽도 있지만 반대하는 여론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대학가는 물론이고 호남지역에서도 이른바 반탄(反彈) 집회가 이어지고 있음을 헌재는 알고 있으리라. 국민 과반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 인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재의 고유 권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고유 권한을 확고히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과 절차가 지극히 정당해야 한다. 헌재가 규정에 따른 절차를 생략하거나 조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심판 후 상당한 후폭풍을 야기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는 국익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헌재에는 재판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의 명망 있고 경험 많은 재판관을 두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은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정치와 여론 등 복잡한 변수가 한 데 뒤엉켜 있는 보기 드문 사건이다. 결과에 따라 사회가 급격히 요동칠 것이다. 지난해 말 후진국 형 비상계엄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접해 우리 사회가 일순간 혼란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을 분명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헌재는 변론을 좀 더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후 평의를 거쳐 탄핵심판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국민은 그 과정에서 통치권자의 비상계엄 선포 등 과정이 헌법에 합치하는 것인지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헌재는 초시계까지 동원해 핵심 증인의 신문 시간을 90분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하루에 증인을 4명씩 몰아 신문하기로 하는 등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증언과 증거가 엇갈리고 있어 충분한 심리가 필요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헌재는 정해놓은 갈 길을 마구 달리고 있다. 그 뭔가가 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과정에서 절차적 흠결이 생겨나고 '졸속 심리' 논란이 확산한다면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막중한 직무를 맡고 있는 헌재는 자승자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으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할 헌재가 스스로 몸을 묶어 존중 받을 권리를 걷어차는 꼴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의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하고 형사 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 조사 등 적법 절차를 준수하는 한편, 충실히 심리하도록 촉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헌재는 새겨들어야 한다. 자승자박의 후폭풍이 우리 사회에 미칠 범위와 수준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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