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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존비즈온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ERP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약 300만 개 기업이 더존비즈온의 ERP 플랫폼을 사용 중인데요. ERP는 기업의 생산, 재고, 재무 등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으로, 기업 경영에 있어 마치 '현황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당초 더존비즈온은 보유한 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터넷은행 설립에 도전했습니다. 유력 후보로 떠올랐지만, 변동성이 크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신규 사업보다는 기존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신청을 철회했죠. 대신 제주은행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4.99%의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제주은행은 신한금융이 75%가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던 지방은행으로, 더존비즈온이 제주은행 지분 투자를 결정한 건 지난 2019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신한금융과의 긴밀한 협력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제주은행과 더존비즈온은 'ERP 뱅킹'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함께 추진합니다. 수백만 기업 고객을 보유한 더존비즈온의 ERP 플랫폼에 금융 기능을 추가하고, 제주은행의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해당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양사는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을 기대할 수 있죠. 기존에도 은행들이 기업의 자금 관리를 돕기 위해 펌뱅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기업 경영 관리와 금융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입니다. 유상증자 발표 하루 만에 제주은행 주가는 28% 넘게 급등했는데요. 더존비즈온은 이번 지분 투자를 통해 데이터 기반 금융사업을 지속 추진할 수 있고, 인터넷은행을 직접 설립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제주은행 또한 더존비즈온의 방대한 기업 고객을 기반으로 기업금융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양사가 목표 달성을 위한 '지름길'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기업 수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인데다, 지방은행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제주은행이 전국 단위의 플랫폼 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작년 말 기준 제주은행의 총자산은 부산은행의 10분의 1 수준인 7조4364억원, 당기순이익은 104억원에 그쳤습니다. 제한적인 영업 기반으로 몸집이 작다는 점에서 ERP 뱅킹 시도가 '지름길'이 아닌, 자칫 '고빗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양사는 곧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사업 계획 수립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사업의 성과와는 별개로 핀테크와 지방은행 간의 협업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시도가 있어야 결과도 있는 만큼, 양사의 'ERP 뱅킹' 협업이 향후 금융권의 새로운 혁신 모델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금융권의 혁신이 절실한 시점, 양사의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결실을 맺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