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회 규범이 충돌하는 무대 위의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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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2023년 12월,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의 초연을 통해 이미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광진문화재단과의 공동기획으로 선보였던 이 공연은 고전을 무대언어로 치환한 실험적 시도, 그리고 신체 연기를 중심으로 구축된 연극적 해석으로 호평을 얻었다. 당시 평단은 이 작품이 구현한 철학적 통찰과 시각적 밀도를 두고 "무대 위의 카뮈"라는 평을 아끼지 않았다. 2025년 서울연극제에서는 초연의 성과를 바탕으로 연출과 배우진을 재정비해, 한층 정제된 무대 감각과 신체 표현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은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구의 발명만큼 혁명적이었다고 평가된 이 문장은, 비이성적이고 뒤틀린 세계의 서막을 알리는 카뮈식 실존주의의 선언이자, 뫼르소라는 인물을 둘러싼 인식의 균열을 예고한다. 알제리에 거주하는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는 일요일 친구 레몽의 분쟁에 휘말려 해변에서 상대 패거리 중 한 사람을 다섯 발의 총성으로 살해한다. 재판에 넘겨진 그는 범행의 동기를 묻는 법정에서 "모두가 태양 탓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그러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는 독방에서 형의 집행을 기다리며, 사제가 건네는 속죄의 기도조차 끝내 거절한다.
이 작품의 본질은 단순한 살인의 서사를 넘어선다. '이방인'은 '진실을 말한 자'가 어떻게 사회로부터 단죄되고 배척당하는지를 고발한다. 뫼르소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정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사회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다. 작품은 그렇게 진실, 인간의 존엄, 사회적 규범이 충돌하는 지점을 날카롭게 비추며, 그 안에서 소외된 인간의 고독을 탐색한다.
무대는 절제된 구성 속에서 감각적 밀도를 끌어올린다. 의자와 책상만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무대에 영상과 음향, 조명, 음악, 움직임이 어우러진 복합적 연출이 가미되며, 무대 위에 시청각적 깊이를 더한다. 인물의 감정은 대사가 아니라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이는 이 극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온 신체 중심의 무대 언어이며, 단순한 번안이나 해석이 아니라 원작의 철학을 물성과 에너지로 번역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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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고창석을 비롯해 김미령(양로원원장), 정은영(나레이션), 박재연(사장), 이지선(변호사), 이상일(예심판사), 양주현(이상한 여자), 최이영(마리), 강정탁(레몽), 이강민(사제), 지승찬(뫼르소), 김한빈(재판장) 등 총 11인의 배우가 출연해, 인간 내면의 균열과 사회적 시선의 충돌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말보다 강렬한 감정의 에너지로 무대를 채운다.
연출은 임도완, 조연출 김수민, 조명 이상근, 음향 안창용, 음악 유인영, 영상 전효성·정현희·김인열, 의상 이주희가 각각의 영역에서 무대의 감각을 견인하며, 기획 박재연, 윤진희, 유지은, 그래픽 박지수, 사진 유희정이 공연의 시각적 완결성을 뒷받침한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1998년 창단 이후 한국적 움직임과 색·빛·소리의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무대 미학을 정립해온 중견 극단이다. '보이첵', '하녀들', '한여름밤의 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국내외에서 호평받았으며, 최근에는 미디어 아트와 과학적 장르의 융합을 통해 동시대적 질문에 응답하는 진보적 공연 양식을 탐색하고 있다.
서울연극제는 단지 연극의 경연장이 아닌, 시대의 질문을 무대로 호출하는 공간이다. '이방인'은 그 첫 장에 놓이기에 충분한 무게를 지닌 작품이다. 고전을 다시 쓰는 이 연극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진실을 말하는 일은 왜 이토록 외로운가.
공연은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며, 예매 및 자세한 정보는 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와 인터파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진실과 고독, 사회의 윤리를 무대에서 직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방인'은 사유의 한 가운데로 향하는 단단한 초대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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