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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천에 상륙’…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 지역성과 실험성의 항로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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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7. 06. 08:47

17년 만의 인천 개최, 시민참여·국제교류·청년연극 등 새로운 물결 주도
전통과 실험, 지역과 세계가 교차하는 무대… 연극이 묻는 오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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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연극은 여전히 오늘을 말할 수 있을까. 그 답을 묻는 거대한 실험이 인천에서 시작된다. 오는 5일부터 27일까지 인천 전역에서 펼쳐지는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는 "연극, 인천에 상륙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성과 실험성, 그리고 참여의 확장을 주제로 관객을 맞는다. 1983년 출범 이래 전국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최대 규모의 연극 축제는 올해로 43회를 맞으며, 17년 만에 인천에서 다시 열린다.

이번 축제의 명예대회장은 원로 배우 전무송이 맡았으며, 배우 송옥순·손병호·박상민·이일화·예지원·장연남이 홍보대사로 위촉돼 축제의 의미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을 보탠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연극·영화·TV 출신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홍보대사단은,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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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 명예대회장 전무송(왼쪽)과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송옥순, 손병호, 박상민, 이일화, 예지원, 장연남./ 사진 대한민국연극제
◇ 본선 경연을 넘어, 연극 생태계의 파노라마

이번 연극제에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예선을 통과한 대표 극단이 참여해 본선 경연을 펼친다. 그러나 단순히 경쟁과 수상에 초점을 맞추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시민 참여형 콘텐츠와 소극장 중심 창작극, 청년 예술가의 공동창작 프로젝트, 국제 연극 교류 등 다층적인 구성으로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막식은 5일 인천항 제8부두 상상플랫폼에서 거리극과 마임, 전통무용, 다큐멘터리 상영 등으로 문을 연다. '항구 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반영한 퍼포먼스 '항구 사람들'과 은율탈춤, 장사익의 축가가 어우러진 이 무대는 지역성과 예술성의 상징적 융합을 노린다. 폐막은 7월 27일로 예정돼 있다.

본선 경연은 7월 6일부터 25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서구문화회관, 문학시어터, 청라 블루노바홀 등 4개 극장에서 이어지며, 이 기간 동안 '지역 연극의 오늘'이 무대 위에서 맞붙는다.

인천 대표로는 극단 한무대의 창작극 '남생이'가 출전한다. 이 밖에도 전국 16개 시·도에서 선발된 대표 극단들이 경연에 참여하며, 각 지역의 연극적 개성과 무대 실험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남에서는 극단 예술마당이 '황금여인숙'을, 강원은 백향씨어터가 '조선간장 기억을 담그다'를 출품한다. 대전의 극단 순수는 '검은 얼룩', 충남의 극단 젊은무대는 '소나무 아래 잠들다', 경남의 극단 미소는 '대찬이발소'를 무대에 올린다.

제주의 퍼포먼스단 몸짓은 '만선', 서울의 광대모둠은 '대한맨숀', 경북의 극단 둥지는 '16세기 닥터', 광주의 진달래피네는 '흑색소음', 경기의 예성은 '심청전을 짓다', 울산의 푸른가시는 '바람이 머문 자리'를 선보인다.

후반부에는 부산의 극단 누리에가 '어둠상자'를, 전북의 극단 까치동이 '물 흐르듯 구름 가듯'을, 대구의 이송희 레퍼토리가 '객사'를, 충북의 청년극장이 '두껍아 두껍아'를 공연할 예정이다.

이처럼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극단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연극의 지형도와 창작의 다양성을 조망할 수 있는 장으로, 전통과 실험, 지역성과 보편성이 함께 호흡하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소극장 실험극부터 국제연극포럼까지…확장되는 축제의 지평

이번 연극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본선 이외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실험성 때문이다.
8일부터 13일까지는 인천 지역 최초의 소극장 연극축제 '크로스떼아뜨르페스타 파란'이 학산소극장과 수봉문화회관 등지에서 열린다. 일본 극단 THEATRE ATMAN의 초청공연과 함께, 전국 청년 극단들이 자유로운 형식의 연극을 선보이며, 연극 본연의 실험정신을 되살린다.

15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는 '네트워킹 페스티벌 돌풍'은 전국 청년 연극인 150명이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 모여 5박6일간 집단 창작을 펼치는 공동체 실험이다. 이들이 만든 작품은 19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릴레이 공연으로 공개된다. 근현대 희곡을 청년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세대 간 연결의 가능성도 탐색한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인 '등대'(19~26일)도 눈에 띈다. 전국 8개 시민극단이 인천 학산소극장에서 직접 제작·출연하는 이 무대는 연극을 더 이상 '전문가의 언어'가 아닌 '공동체의 목소리'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그리고 26일에는 북마케도니아 연출가 슬라브코 프로이코브스키와 국내 배우들이 공동 작업한 '일렉트라 스토리'가 청라 블루노바홀에서 선보인다. 동유럽의 신화 해석과 한국 배우의 신체성, 그리고 이질적 언어 사이의 충돌은 연극이 가진 국제적 공감 가능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열리는 '인천 국제연극포럼'에는 8개국 연극인이 참여하며, 한중 MOU 체결도 예정돼 있어 정책적 교류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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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연극의 자생력, 이제 다시 항해를 시작하다

대한민국연극제의 인천 개최는 단순한 순환 도시 선정의 의미를 넘는다. 극단 수가 줄고 창작 기회가 제한되는 지역 연극계 현실 속에서, 이번 연극제는 연극의 저변 확대와 공동체 회복을 실현할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인천의 연극인들은 이번 행사를 "침체된 연극 생태계에 숨을 불어넣는 기회", "시민과 연극인이 함께 만드는 장"으로 규정한다. 극단 한무대의 최종욱 감독은 "그동안 잊혔던 인천의 예술적 정체성이 이번 무대를 통해 다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전무송 명예대회장 역시 "연극은 결국 사람"이라며, 무대와 관객을 연결하는 문화적 다리로서 연극의 역할을 강조했다.

◇ 공연예술계의 위기와 전환…대한민국연극제가 던지는 질문

한편, 대한민국연극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녹록지 않다. 예술인 복지, 지원 정책, 관객 감소 등의 문제가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운다. 연극 분야는 공연예술계 전반에서도 가장 취약한 기반을 지닌 영역으로, 낮은 수익 구조와 불안정한 창작 환경 속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예술인 복지와 지속 가능한 창작 기반 마련을 위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지원은 늘고 있지만, 공모사업 위주의 지원 체계는 신생 단체나 실험극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변화의 바람도 감지된다. 예술위와 문체부는 장기적 집중 지원 방식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서울문화재단 등은 디지털 전환에 발맞춰 공연예술 NFT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관객층의 변화-중장년층 비중 증가와 여성 관객의 확대-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기획도 늘고 있다.

이번 연극제가 보여주는 '실험', '연대', '확장'이라는 키워드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한 가지 응답이다. 오랜 침묵과 단절을 넘어, 다시 한번 사람과 사람을 무대 위에서 마주 보게 하는 것. 그 역할을 연극이 해낼 수 있을지, 인천에서의 항해는 이제 막 시작됐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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