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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인요한의 역설, 빈자리서 발견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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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보 기자

승인 : 2025. 12. 21. 18:53

심준보 증명사진
"정치가 흑백논리에 갇히면 국민의 삶은 회색이 된다."

지난 10일 사퇴한 인요한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를 떠나며 남긴 말이다. 집권여당의 혁신위원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최근 정치권의 대립은 현역 정치인과 국회 근무자들이 '역대 최악'이라고 입을 모아 말할만큼 심각하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욕설은 기본이고 주먹다짐을 하자는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온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정책 대신 각자의 팬덤을 위한 자극적인 쇼츠 콘텐츠가 매일 같이 생산된다.

이전 국회는 표면상으로는 싸워도 물밑에서는 어떻게든 협치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이끌었으나, 최근에는 최소한의 소통도 사라지고 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최근 기자가 국회 본청 복도에서 목격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같은 상임위원회 소속 야당 중진 의원이 "의총 가시냐"며 건넨 밝은 인사에 여당 초선 의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스쳐 지나갔다. 정치를 '사람'으로 배웠던 다선과 달리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작금의 살벌한 국회 분위기가 초선 의원의 인사조차 주저하게 만든 모습이다.

이들이 내놓는 언어는 전장에 병사들을 내보내는 장군의 그것을 보는듯 하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죄인은 사약을 골라마실 권리가 없다"라고 한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들이받는 소는 돌로 쳐 죽일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년 반 동안 당의 쇄신을 책임졌던 인 전 의원은 스스로 짐을 쌌다. 장동혁 대표 등 지도부가 '하실 일이 더 많다'며 만류했지만, 인 전 의원은 이미 극단으로 치닫는 진영 정치에 깊은 무력감을 느낀 상태였다.

다만 그를 배웅하는 민주당의 언어는 의외였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인 의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는데, 단순한 인사치레로 느껴지진 않았다. 박 대변인은 "국민과 민생을 위했던 인 의원에 감사한다"며 "그의 진단을 무겁게 받아들겠다"고 했다. 이어 "인 의원의 지적대로 진영만을 바라보는 정치는 국민을 지치게 만든다"며 "흑백논리·진영논리를 끊어야 국민통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여기에 박선원 민주당 의원도 1985년 서울미문화원 농성 당시, 학생들과 미국 사이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애쓰던 '청년 인요한'의 헌신을 소환하며 "고마웠다"는 인사를 보탰다. 박 의원은 계엄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계엄 내막'을 알리고 내란죄를 비판해온 야당의 '공격수'다. 그런데 인 전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심정은 이해한다"고 말했던 전력이 있어 더 의외성을 더한다. 40년 전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 존중을 표한 이들의 배웅은 그래서 더 인상 깊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 인 전 의원은 '편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계엄의 심정은 이해한다는 표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향해 "전두환보다 더한 정치를 봤다"고 독설을 퍼부었던 인물이다. 당의 입을 대변하는 박수현 대변인이나, 계엄 내막을 알리는 데 주력해온 박선원 의원에게 그는 반론의 여지 없이 극복해야 할 정치적 '적'이었다. 그래서 더 희망을 본다.

상대의 생각을 떠나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일하는 동업자로 바라보는 것. 인요한을 떠나보내는 민주당을 보며 우리가 느낀 '의외성'은 어쩌면 그동안 잊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정치의 본모습이다.
심준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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