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EU 디지털 규제, 글로벌 검열 산업 복합체"
EU "디지털 주권 침해·매카시즘"
'보복 조치' 예고에 미-EU 관계 최악의 냉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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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인 유럽의 전직 장관급 인사를 겨냥한 이례적인 비자 제재에 EU가 강하게 반발하며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연말을 앞두고 대서양 양측의 관계가 최악의 냉기류로 치닫고 있다.
◇ 美, EU 디지털서비스법 관여 고위 관리·시민단체 관계자 5명 비자 제한
미국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티에리 브르통 전 EU 내수담당 집행위원과 독일·영국의 온라인 혐오·가짜뉴스 감시 단체 관계자 등 총 5명에 대해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들이 미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검열하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도록 조직적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브르통 전 위원이 설계에 깊이 관여한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문제 삼았다. DSA는 불법 콘텐츠·혐오 발언·허위 정보에 대한 플랫폼의 관리 의무를 강화하고,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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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가 이번 제재의 명분으로 내세운 핵심 논리는 '표현의 자유 수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가 EU의 기술 규정을 '글로벌 검열 산업 복합체'로 보고, DSA를 중심으로 형성된 규제·감시 생태계 전체를 구조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EU의 디지털 규제가 사실상 비관세 무역장벽이자 미국 기업과 시민의 발언을 억압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EU가 이달 초 엑스(X·옛 트위터)의 계정 인증 표시와 광고 정책을 문제 삼아 1억2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J.D. 밴스 부통령은 "미국 기업을 쓸데없는 문제로 공격하지 말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미국인의 발언을 제한하거나 미국 기업의 수익 모델을 약화시키는 외국 주도의 규제에는 대응할 것"이라며 향후 유사 사례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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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감정적 골은 지난해 미국 대선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깊어졌다. 브르통 전 위원은 엑스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의 온라인 생중계 대담을 추진하자 'DSA를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이에 트럼프 캠프는 '대선 개입'이라고 반발했고, EU는 하루 만에 '특정 이벤트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 DSA 준수 의무를 상기한 것'이라고 진화했지만, 트럼프 진영의 반감은 누적됐다는 평가다.
◇ EU "유럽 디지털 규제, 워싱턴이 정할 수 없다"…보복 시사
EU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브르통 전 집행위원은 엑스에 "매카시즘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는가"라며 "DSA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유럽 의회와 27개 회원국이 채택한 법"이라고 반박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조치를 "동맹과 파트너, 친구 사이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부당한 조치에 맞서 우리의 규제 자율성을 방어하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EU는 개방적이고 규칙에 기반한 단일 시장으로, 우리의 민주적 가치와 국제적 약속에 발맞춰 경제 활동을 규제할 주권적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유럽의 독립을 지킬 것"이라고 했고, 독일은 유럽의 디지털 규정이 미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다만 EU가 실제로 어떤 보복 조치를 택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독일 dpa통신은 EU가 특정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제한하거나 경제적 대응을 선택지로 검토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