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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민해야 할 부분은 지금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이 마치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밟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도 같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의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는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미디어 산업 전문가 조영신의 책 '애프터 넷플릭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글로벌 시장으로의 편입을 '상수'로 두고,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통할 수 있는 보다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일부 작품이 거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특정한 차원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특정한 장르 콘텐츠의 제작을 잘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취향을 저격하고 다양한 시청자의 욕망과 시선을 견딜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의 전략과 리스크 관리의 역량은 충분하지 않다. 간간히 뉴스를 장식하는 부적절한 콘텐츠 요소에 대한 해외 수용자의 반발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직 우리 영상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충분히 시야에 넣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부 작품이 보여준 가능성을 산업 전반의 체질 변화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일부 성과는 오히려 취약한 국내 산업의 기반을 공격하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
위기엔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 위기 속에 그 위기를 돌파할 기회 요인도 함께 있기 마련이다. 지난 몇년간 우리가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변화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해외 마켓에서 콘텐츠 수출을 위해 현장을 뛰던 사람들,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력과 협상을 경험한 사람들, 글로벌 마케팅과 현지화 과정을 진행해본 사람들, 해외 창작자와 협력의 경험을 쌓아가는 사람들. 기존에 부족했던 경쟁력의 요소들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에서 재도약, 혹은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중요한 건,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의 문제다. 지금 영상 콘텐츠 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변화의 계기도 이 과정에서 축적된 '사람'에서 나올 것이다. 또 다시 위기가 온다면, 그것은 다음 시대의 필요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데 실패하는 것이 원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이다. 어떤 산업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이탈하고 실망하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창작과 출연, 참여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오래 쌓이지 않도록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이 다음 단계로 성숙할 수 있도록, 좋은 인재가 모여들고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