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장원재의 스포츠인] 올림픽만 9번 취재한 스포츠 매니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sl1.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227010015119

글자크기

닫기

장원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3. 02. 19:28

전 SBS 김정일 아나운서
아시아투데이 장원재 선임 기자 = 스포츠는 '중계'를 만나면서 산업이 되었다. '스포츠 캐스터'는 그래서 존재 자체가 스포츠팬들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명경기 명장면을 떠올릴 때면 그들의 목소리가 늘 귓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SBS의 명 스포츠 캐스터 김정일 아나운서도 그 가운데 하나다.

- 자기소개 좀 부탁드린다.

"1988년도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2023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35년간 뉴스 및 각종 프로그램을 맡았다. 스포츠 중계는 축구, 야구를 비롯해 33개 종목을 중계했다."

KakaoTalk_20250227_173235748
김정일 전 SBS 아나운서./ 사진=전형찬 기자
- 근황은 어떤가.

"아무 연고지 없는 충북 음성에 귀촌하여 마당에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며 지낸다. 일반인들을 위한 스피치 교육 강의와 지적장애인들의 언어향상을 도우며 가르치고 있다."

- 글을 안 쓰나.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각종 종목경기를 중계하면서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하고 느낀 에피소드와 다른 장르의 방송을 하며 겪은 방송국 주변의 뒷이야기들을 엮어 책을 쓰려 준비 중이다."

- 하계, 동계 올림픽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올림픽만 통산 9번을 다녀왔다. 첫 올림픽 출장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도 갔다 왔다. 마지막 올림픽 중계는 2020 도쿄 올림픽이다."

KakaoTalk_20250227_175012485_04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중계/ 사진제공=김정일
- 북한 독재자와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이름 때문에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사람들이 잘 기억해 준다."

- 북한 측과 에피소드는 없나.

"있다. 북한 측하고 교류할 때 북한 기자들이 SBS에 왔다. 그 친구들이 오니까 저희 편집 기자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고 농담으로 '아, 여기 김정일 위원장 이름 있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북한 기자가 금방 말을 받아쳐서 다같이 웃었다."

- 뭐라고 했나.

"아,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시구만요, 라고 하더라."

- 가장 처음에 중계한 스포츠 방송을 기억하나.

"1994년도 동계체전에서 스키 중계다. 그전까지는 뉴스, 교양, 라디오 프로그램을 했다. 동계올림픽 중계 대비 예행 연습이었다."

- 어떻게 준비하고 갔나.

"사실상 아무 준비도 없이 갔다."

- 정말 준비가 없었나.

"그 전에 스키를 개인적으로 레저 삼아 타기는 했지만, 그 지식 가지고는 중계가 불가능하더라. 그래서 규정집도 미리 구해서 보고, 스키협회 자료를 이 잡듯이 뒤져서 준비했다. 인터넷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자료를 직접 가서 받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 뭔가.

"의상이었다. 그냥 보통 겨울옷을 입고 갔는데, 정식 스키복을 입고 방송을 해야 그림이 나오는 거였다. 당시 PD가 김한종 국장이었는데, 그분이 첫 번째 오프닝 샷을 잡고 나서 영 아니다 싶었는지 자기 돈으로 스키숍에 가서 스키복과 모자를 사주셨다. 그래서 그다음 오프닝 잡을 때부터는 스키복을 입고 있었다."

- 아래 위 다 사줬나?

"아니다. 바지까지는 안 사주시더라. 카메라에 안 나오니까."

- 기념품 같은 의상이다.

"맞다. 그래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이제는 낡았다. 벌써 거의 30년 된 옷이니까. 그런 버릴 수 없어서 고이 간직하고 있다."

- 스포츠 캐스터는 본인의 적극적 선택인가.

"그렇다. 저는 어려서부터 스포츠가 좋았다. 검도 3단으로, 중학교 때 소년체전 출전 기록도 있다. 축구, 야구 등 스포츠가 좋아서 중계도 보고 스포츠신문도 사서 읽고 서울운동장 출입도 잦았다. 지금도 70년대 고교야구 선수들과 그들의 플레이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 스포츠 중계는 생방송이 많다. 그래서 방송 사고도 많이 나고 돌발상황도 속출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시리즈 잠실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기억한다. 3회말부터 신호가 왔다. 보다 못한 PD가 박스를 구해 비닐로 사방을 두른 '임시 변기'를 만들어 왔는데, 용변을 보면 그 장면이 관중들에게 노출되는 상황이었다. 중계석에서 화장실까지 거리도 멀었다. 라디오 중게라 캐스터 맨트가 많이 필요해서 장시간 이석도 할 수 없었다. 도 닦는 기분으로 버텼는데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 주변에서 도와줄래야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겠다.

"제 옆에서 정말 근심어린 표정으로 저를 챙겨주던 해설자를 잊지 못한다. 최동원 형이다."

KakaoTalk_20250227_175012485_05
1990년대 야구중계 모습. 맨 왼쪽이 김정일 아나운서, 오른쪽 붉은 셔츠가 고 최동원 해설자다./사진제공=김정일
- 멘트 관련 사고도 있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모태범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에서 금메달을 땄다. 해설하던 제갈성렬 위원이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 따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주님이 허락한 금메달'이라는 멘트를 했디."

- 공공방송은 특정 종교를 홍보할 수 없다.

"그래서 난리가 났다. 그 여파가 저에게도 미치더라. 시말서 쓰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어떤 어려움들이 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두바이 담배 사건이 있다."

- 그건 뭔가.

"그때 당시에는 해설자와 캐스터들이 외국에 나가면 가끔 하프타임 때나 중간 휴식 시간에 중계석에서 그냥 담배를 피웠다. 국내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픈된 부스였고 옆에 중동 방송국 캐스터나 해설자들은 뭐 중계하면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담뱃불 붙인 순간 느낌이 싸했다. 현지 방송국 카메라를 빌려서 쓰고 그 화면을 위성으로 보내는 중게였는데 현지 카메라맨이 중동 식 기준으로 생각한 거다. 흡연 장면은 전혀 논란이 안 되니까 제 흡연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저랑 해설자가 담배 피우는 장면이 그대로 우리 한국으로 전송이 됐다."

- 몇 년도쯤 일어난 일인가.

"2009년에 벌어진 2010년 월드컵 예선이었다."

- 잘 수습했나.

"담배는 재빨리 내렸는데 연기가 올라오니까 한국 네티즌들이 재미있는 글을 많이 올렸다.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말보로 피우세요? 던힐 피우세요? 궁금하네요.' 이런 반 조롱성 댓글도 많이 올라왔고 회사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회의도 했다. 모기향 얘기도 나왔는데 중동에는 모기향을 안 피우지 않나. 괜히 잘못 얘기했다가는 문제가 더 커지고 난리가 난다고 해서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경위서는 제가 썼다."

- 이실직고하고 용서받으셨다. 아나운서도 국제 경기에 가면 애국적이 되나.

"분명히 애국적이 된다. 목소리도 옥타브가 더 올라간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그렇게 애국적인 중계는 드물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뭔가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쪽에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한다는 고충이 있었다."

- 그것이 애국적 중계와 연관이 있나.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애국적으로 중계하고, 우리와 맞서는 상대 선수들을 마치 지옥에서 온 사람들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런 중계문화가 2020년대로 들어오면서 또 많이 바뀌었다."

- 어떻게 바뀌었나.

"좀 더 객관적 논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 한동안은 만담식 중계도 굉장히 유행했다.

"맞다. 그래서 해설자나 캐스터들이 농담을 밥 먹듯이 했다. 그걸 정말 싫어했던 분이 있다. 신문선 해설위원이다."

- 진지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축구를 희화화시키면 안 된다, 축구는 절대 희화화시킬 만큼 그렇게 우스운 종목이 아니다,라고 했다."

KakaoTalk_20250227_175012485_01
2006년 독일 월드컵 중계. 가운데가 김정일 캐스터, 오른쪽이 신문선 해설위원이다./ 사진제공=김정일
- 혹시 중계하다가 안타까움에 선수에게 감정이입한 경우가 있나.

"굉장히 많다. 야구 같은 경우는 이제 프랜차이즈가 확고하지 않나. 각 도시별라이벌 의식도 상당하고, 저도 사실은 응원하는 팀이 있다. 그런데 그걸 숨기기가 참 어려웠다. 축구 같은 경우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이 분명히 있다."

-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나. 아니면 본인만 아는 건가.

"시청자들은 상당히 예민하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안타깝습니다'라는 똑같은 멘트를 하더라도 숨소리가 다르고 톤이 다르고 그 느낌이 다르다. 그걸 알고 지적하는 시청자가 의외로 많다."

- 캐스터의 개인 성향도 드러난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서 미드필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캐스터라면 아무래도 멘트가 그쪽으로 많이 간다. 골키퍼 매니아인 캐스터가 있으면 '잘 찾습니다!' 보다는 '잘 막았습니다!'라는 멘트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중계에는 미묘한 요소가 많 다."

- 가장 기억나는 경기라면.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다. 이승엽의 동점 스리런홈런, 마해영의 역전 홈런으로 삼성이 9회말 대역전을 완성하면서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한을 풀었다. 관중도, 선수도, 지도자도, 심지어는 치어리더도 다 펑펑 울었다. 패장 김성근 감독의 처연했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 어렸을 때 봤는데 예상만큼 아주 크게 성공한 선수라면 누가 있을까.

"야구에서는 이상훈 선수다. 그 친구가 사실은 제 모교 서울고등학교 후배다.근데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는 그냥 유망주였었다. 고대 가서도 그 친구가 운동을 그다지 열심히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본인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등, 가정환경이 참 어려워서다. 그랬는데 프로에 가서는 정말 큰 족적을 남긴 선수가 됐다."

- 캐릭터도 독특했다. 축구 선수로는 누구를 특별하게 기억하나.

"초등학교 동창이 조민국 선수다. 피차 어릴 적에 봤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잘하고 뛰어나더라도 그냥 내 동창, 우리 동네 아이다. 학교 가면 매일 볼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똥볼의 왕자'라고 친구들이 놀렸는데, 국가대표로까지 성장을 했다."

KakaoTalk_20250227_175012485_03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해설. 왼쪽부터 박문성, 김정일, 고 유상철./ 사진제공=김정일
- 초등학교 시절에 조민국 감독은 어떤 선수였나.

"힘이 좋은 어린이였다. 중고등학교 때 훌쩍 큰 걸로 안다. 체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슈팅 구질이 묵직했다. 국가대표까지 될 줄은 몰랐다."

- 조민국은 중동고 시절엔 공격수, 고대 시절엔 수비로 돌았다가 국가대표로 뽑힌 후 86년 월드컵 예선전 말레이시아전 때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했다. 깜짝 선봉장으로 나와 다이빙 헤딩 슛을 넣었다.

"기억한다. 집에서 봤다. 소리를 지르며 흥분했다."

- 동창이 골을 넣었을 때 기분은.

"묘했다. 그 골도 골이지만, 민국이가 국가대표가 됐을 때 제가 주변에 굉장히 자랑하고 다녔다. 그 경기 얼마 후 저는 방송사에 입사하고 그 친구는 프로팀에 입단했다."

- 럭키 금성 프로축구단이었다.

"당시 충무로에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럭키 금성 선수단이 저와 같은 극장에서 똑같은 시간에 단체로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 민국이를 만난 기억이 난다."

- 아나운서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준다면.

"스킬적인 측면에선 스포츠 중계는 사실 스포츠와 비슷하다. 너무 기교를 입히지 말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그다음엔 최근 추세에 관한 이야기인데, 요즘엔 신인들보다는 중고 신인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 경력자들을 많이 뽑는다. 그러니까, 공중파나 종편만 보지 말고 지역 방송이나 조그마한 케이블방송이라도 가서 경력을 쌓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

- 마무리 질문이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번 하고 싶은 중계는.

"손흥민이 뛰는 경기를 중계해 보고 싶다. 토트넘도 해보고 싶고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다."

- 왜 그런가.

"손흥민이라는 선수는 기량이나 인성도 훌륭하지만, 일단 그 존재 자체로서도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면,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꼭 한번 중계해보고 싶다."

KakaoTalk_20250227_173250365
김정일 전 SBS 아나운서(왼쪽)와 장원재 선임기자.사진=전형찬 기자
장원재 선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