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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지도자 中 후야오방 셋째아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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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5. 04. 01. 22:20

사인은 갑작스런 심장마비
심장마비는 가족 내력,지병
마오 시대로 이념 후퇴 경고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총서기와 함께 대표적인 비운의 개혁파 지도자로 꼽히는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장남인 후더화(胡德華) 당 통일전선공작부 부부장이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0세를 훌쩍 넘은 중국인들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다소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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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지도자 후야오방 전 중국 총서기의 장남 후더핑 전 통일전선공작부 부부장. 당의 고위직을 역임하기는 했으나 부친처럼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신징바오(新京報).
중국 당정 고위층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들의 1일 전언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30일 밤 베이징에 소재한 자택의 거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년 전부터 부정기적인 수혈을 받았을 만큼 심한 빈혈에 시다렸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한다. 가족들이 발견했을 당시에는 심장마비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부친인 후 전 총서기 역시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입원 중 1989년 4월 15일 숨졌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심장마비가 가족의 내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서 태어난 후 전 부부장은 생전에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 가운데 드물게 정치 개혁과 언론 자유를 줄기차게 외쳤던 자유주의 신봉자로 유명했다. 이는 그가 1994년에 베이징탤런트테크를 설립, 금융을 비롯해 은행,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에 매진한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2015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이념으로 후퇴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 집권 이후 반부패 캠페인 등이 추진되는 현실에 대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또 이듬해에는 공산당의 민감한 역사를 다루면서 정치 개혁을 주창한 자유주의 잡지 옌황춘추(炎黃春秋)의 부사장을 맡았으나 3개월도 안 돼 물러났다. 외압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후 옌황춘추는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논조가 그가 재임했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유족으로는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아 활발하게 활동 중인 부인과 1남1녀가 있다. 남동생 2명과 여동생 한명도 아직 현역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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