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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칼럼] 4조원 국부 유출 막은 국세청의 끈질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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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18. 18:00


남성환 대기자.
국세청은 본질상 세금을 거둬들이는 조직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과세 대상으로부터 내야 할 세금을 확보해 국가 살림의 밑천으로 삼는 일을 하는 게 국세청이다.

숱한 세목의 세금을 납세자가 알아서 스스로 납부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국세청은 보안이 철저한 홈택스 등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납세자에게 수시로 세금 납부를 안내하고 납부하도록 독려한다.

그렇다고 국세청이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만 한다고 보면 오산이다. 국세청은 잘못 부과된 세금을 바로잡아 걷지 못한 세금을 걷는 역할을 한다. 세금신고 납부 독려 못지않게 중요한 임무다. 착오나 악의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납세자를 골라내 세금을 추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임무다. 

세금 신고 독려를 하거나 세무조사를 하는 국세청 본연의 업무를 하는 데에도 국세청의 일손은 늘 부족하다. 탈세 수법이 다양해지고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면서 세원이 복잡해짐에 따라 국세청의 할 일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제도나 시스템을 바꿔서 세수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빛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국세청이 꼭 해야 할 사명이다. 국민 관심 밖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된다면 발벗고 나서는 국세청 직원들이 있기에 부족한 세수를 충당할 수 있다.

국세청(청장 임광현)은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의 국내원천소득 해당 여부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를 거쳐 국가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18일 받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승소는 국세청 직원들의 끈질긴 노력의 성과물이다. 원천징수가 안 된 채 외국으로 흘러들어 갔던 국내 미등록 특허사용료를 앞으로는 원천징수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 등 해외 기업 보유 특허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특허가 국내에 등록돼 있지 않으면 사용료 원천징수를 한 후 환급을 청구해 오고 있었다.

조약상 특허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대가에 대해 원천지국 과세권이 인정되는데, 법원에서는 소위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유효하다는 특허속지주의 법리에 따라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는 국내에서 '사용'한다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고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1992년 이후 33년간 유지되던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어 특허속지주의 법리에서 벗어나 실제로 특허 기술을 사용했다면 대가로 지급한 사용료를 국내원천소득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앞으로 SK하이닉스 등 100여 개에 달하는 사건들에 대해 미국에는 등록됐으나 우리나라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 사용 대가도 국내원천소득으로 보아 과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런 쾌거는 국세청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특허 사용료 원천징수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녔지만 대법원 판결이 가로막고 있어 안타까워했던 국세청은 2008년 특허의 '사용'에 대한 법인세법 개정 이후의 사업연도에 대한 소송에서도 패소한 이후 본청과 지방청을 포함한 미등록 특허TF를 구성하여 체계적으로 대응해 왔다. 특허권의 국내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국내 제조 과정 등에 사용되었다면 국내 '사용'으로 본다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국세청은 TF를 통해 국제조세 전문가,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 등 맞춤형 소송대리인을 선임하고 내부 변호사, 소송수행자 등과 본청이 협의해 대응 논리를 보완하고 논리에 부합하는 증거자료를 수집해 오는 등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특히 1979년 발효된 한·미 조세조약의 체결과정을 추적해 50년이 다 되어가는 1976년 당시의 입법 자료를 찾아내기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조세조약의 문맥 해석에 대한 새로운 대응논리를 마련하여 제출했다. 국가 간 정보교환 등의 제도를 활용해 우리와의 조약체결 상대국인 미국에서도 특허의 등록지 기준이 아닌 실제 사용지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자료와 관련 학술자료 등을 상세히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은 국세청에는 의미가 각별한 사례다. 무엇보다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국내 과세권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은 국가재정 확충이라는 국세청의 근본 사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불복 등의 세액만 추산해도 4조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판례 변경이 되지 않았다면 모두 국외로 지급돼야 할 우리의 소중한 세금이다. 우리 기업들의 특허 사용료 지급은 현재 불복 중인 사업연도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십조 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례 이외에 국세청은 올 들어 론스타 관련 세금 2430여 억원을 아꼈고 효성그룹과의 2560억원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이들 사례 모두 국세청 직원들의 집념이 바탕이 됐다. 이처럼 2만여 명의 국세청 직원들이 안정적 세수 확보를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기에 대한민국호가 순항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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