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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트럼프 랠리’의 종말…가상화폐 시장 덮친 ‘테크 렉’과 새로운 겨울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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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2. 08. 14:08

'트럼프 효과' 1주일만에 증발… 비트코인 7만 달러선 '불안한 횡보'
AI 촉발 '테크 렉’ 공포와 유동성 가뭄
'기술이 스스로를 잡아먹는' 시장 리셋
안갯속 '바닥론' 논쟁과 황량한 겨울의 서사
FINTECH-CRYPTO/BITHUMB
2025년 9월 10일(현지시간) 찍은 비트코인 일러스트레이션./로이터·연합
지난 수개월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우호적 정책 기대감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온 가상화폐 시장이 차갑게 식어붙고 있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불과 1주일 만에 대선 이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으며, 시장 전반에는 새로운 '가상화폐 겨울(crypto winter)'이 시작됐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폭락이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국제 금융 시스템 내 위험 자산의 위계가 재편되는 '넥스내핑(neck-snapping·목이 꺾이는 듯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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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 월간 차트 앞에 금도금 기념 비트코인 코인이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2025년 11월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남부 길퍼드의 한 주택에서 찍은 사진./AFP·연합
◇ 비트코인 '트럼프 효과' 소멸... 대선 이후 상승분 1주일 만에 반납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주도한 가상화폐 랠리가 증발했다"고 규정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5일 하루에만 13% 폭락하며 샘 뱅크먼-프리드의 FTX가 붕괴되던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이번 조정은 불과 몇 달 전의 낙관적 전망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친화적인 백악관에 대한 기대 속에 12만5000달러를 돌파했을 당시 주류 은행들이 2026년 말까지 30만달러 도달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산업 친화적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흐름이었고, 트럼프 대통령 가족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통해 수억 달러 규모의 장부상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2년간의 성장지수펀드(ETF) 기대는 가상화폐를 주류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지만, 최근 수개월간 수십억 달러가 빠져나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세계의 가상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번주에는 "지지자와 회의론자 모두가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6일 비트코인이 7만달러 이상으로 반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과 실망은 남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명예 공동 창업자'로 내세운 스타트업이 발행한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I)도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투자자 모르텐 크리스텐센이 "올해는 꽤 나쁠 것"이라며 보유 물량을 매도했다고 전했다. 이 토큰은 출시 이후 50% 이상 하락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정이 '3년여 만의 최대 주간 하락'이라고 규정했다. WSJ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주간 기준 16% 하락해 7만8달러로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치 12만6273달러 대비 약 45%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더리움도 주간 24%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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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로고 화면 앞에 놓인 스마트폰에 주식 시장 하락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표시된 사진으로 2025년 12월 5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 뮐루즈에서 찍은 것./AFP·연합
◇ 시장 구조의 균열, '얇아진 유동성'이 키운 변동성 직격탄

외신들이 제시한 차트와 수치는 가상화폐 시장의 펀더멘털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을 보여준다.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가상화폐 데이터 업체 카이코(Kaiko)의 분석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1% 시장 깊이(market depth)'는 2025년 800만달러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약 500만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주문도 이전보다 훨씬 큰 가격 변동을 일으키고, 시장 참여자들은 유동성 감소를 더 급격하고 불규칙한 가격 변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초부터의 수익률(YTD)을 비교, '지루한' 자산으로 치부되던 범유럽 지수 유로스톡스(Stoxx) 600지수가 약 4% 상승하는 동안, 가상화폐와 밀접하게 연동됐던 미국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내 소프트웨어(SW) 및 서비스 부문은 약 20% 가까이 폭락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술 성장주'와 가상화폐 등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약화됐음을 보여준다고 FT는 분석했다.

WSJ는 가상화폐 낙관론자들조차 이번 급락의 원인에 대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명확한 촉발 요인이 보이지 않는 점이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예측시장과 인공지능(AI), 금·은, 밈 주식 등 '새롭게 빛나는(shiny) 투자 대상'으로 관심이 분산됐다는 설명, ETF와 파생상품 확산에 따른 공급 인식 변화,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의 차기 연준 이사회 의장 지명 효과, 규제 불확실성, 차익 실현 등 다양한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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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2024년 7월 27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
◇ AI가 촉발한 '테크 렉' 공포...'스스로를 잡아먹는' 기술주 폭락, 코인 시장으로 전이

가상화폐 폭락의 배후에는 거대한 기술적 재편, '테크 렉'이 자리 잡고 있다. FT는 "기술주 급락이 시장 리셋을 알린다"며 비트코인을 '위험 자산 재편의 가장 두드러진 피해자'로 지목했다.

FT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역설적으로 기존 테크 기업들의 수익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 기업 앤트로픽이 출시한 생산성 도구들이 기존 분석 및 소프트웨어 회사의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주가가 폭락했고, 이 여파가 투기성 자산인 가상화폐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샤론 벨 주식 애널리스트는 현재 기술주들이 붕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이체방크의 짐 레이드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모든 기술주가 승자'라는 사고방식에서 '잔혹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풍경으로 바꿨다"며 "기술이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기술적 재설정'은 트럼프 대통령도 손을 쓸 수 없는 흐름이라고 FT는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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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회장 겸 공동 창립자가 2022년 9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비트코인 트레저리 언컨퍼런스(Bitcoin Treasuries Unconference)'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
◇ '매파' 연준 의장 지명과 중국의 고강도 규제

정치적·정책적 환경도 가상화폐 시장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뒤 귀금속과 암호화폐가 동반 매도됐으며, 시장에서는 워시 지명자가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비트코인 수요를 낮췄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의 강도 높은 규제도 한몫했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해외에서의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가상화폐 채굴 및 거래를 불법 금융 활동으로 재확인했다. 중국 당국은 "가상화폐 투기가 경제 금융 질서를 어지럽히고 중국인들의 재산상 안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통제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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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라파엘 소재 노스게이트 몰에 설치된 비트코인 입출기(ATM)./AFP·연합
◇ "역사적 조정" vs "추가 폭락"... 안갯속 '바닥론' 공방

시장에서는 현재의 폭락이 '매수 기회'라는 시각과 '더 깊은 추락의 시작'이라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뉴욕의 자산운용사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의 설립자 겸 최고운영책임자인 앤서니 스카라무치는 이번 폭락을 '흔히 있는 조정(Garden Variety adjustment)'으로 지칭하고, 비트코인의 본성상 이러한 변동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회장도 분기별 거액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투자 시계는 최소 4년이 돼야 한다" 장기적인 보유를 주문했다. 로이터는 일부 분석가들이 '바닥에 매우 가까워졌거나 이미 바닥을 찍었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앤드류 모스 디지털 자산 리서치 책임자는 "바닥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강세 지표가 거의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 '강세 서사'를 잃은 시장

블룸버그는 디지털 자산 시장 참여자의 발언을 인용해 가상화폐 시장이 '강세 시나리오(a bull case thesis)'를 찾고 있다며 회복의 서사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한 시장 참여자는 블룸버그에 현재의 시장 분위기에 대해 "이전에도 이보다 더 심한 폭락에서 살아남았지만, 항상 이 순간은 암울하게(bleak)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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