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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의 도쿄 시선] 가위로 세상을 바꾼 사람, 그리고 경력이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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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22. 17:17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얼마 전, 오랜만에 일본의 한 미용실을 찾았다. 시간과 원하는 메뉴가 맞는 곳이 그곳뿐이어서 선택한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조금 낯설었다. 담당 미용사가 50대 중반의 일본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미용 업계는 유난히 젊은 인력이 많다. 이직과 독립이 빠르고, 현장에 남아 있는 중장년 남성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신선했다.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영국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비달 사순(Vidal Sassoon)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199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TV 광고 속에서 그의 이름을 접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 현대 커트의 근간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 미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비달 사순이 들어오기 전, 일본에서는 거의 칼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전통적인 레이어링과 질감 처리를 위해 면도용 칼을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 세팅과 고정이 헤어의 완성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순의 '정밀 커트'가 일본에 정식으로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가위로 각과 라인을 설계해, 머리가 스스로 형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확산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헤어를 '고정하는 조형물'에서 '설계된 구조물'로 바꾼 셈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새삼 깨달았다. 한 시대의 기술 혁신이 단지 스타일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도구와 사고방식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사순은 머리를 자르는 방식을 바꿨고, 동시에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장인의 감각을 재현이 가능한 커리큘럼으로 전환했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기술은 표준이 되었고, 표준은 산업이 되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옮겨갔다. 50대 중후반 이상의 일본 남성들은 한국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최근의 사회와 문화를 비교적 생생하게 접하는 것과 달리, 이 세대의 남성들은 과거의 이미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 미용사 역시 한국의 미용 트렌드에 대해 궁금해했다. 디지털 파마는 어떻게 하는지, 한국에서도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젊은 세대는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지. 나는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날의 대화는 이전에 젊은 일본 미용사들과 나누었던 트렌디한 이야기와는 결이 달랐다. 최신 유행, SNS, 연예인 스타일이 아니라, 기술의 변천과 세대의 경험, 한 나라의 미용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트렌디함'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젊음은 민감하고 빠르다.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그러나 3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사람이 축적한 시간은 또 다른 차원의 통찰을 낳는다. 수많은 실패와 성공, 유행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겪은 사람의 말에는 깊이가 있다. 경력자는 괜히 경력자가 아니다.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낸 사람만이 갖는 감각과 균형감이 있다.

이 깨달음은 미용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도, 정치도, 학문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젊은 에너지에서 시작되지만, 지속 가능성은 경험에서 완성된다. 기하학적 커트를 고안한 비달 사순이 기술을 교육으로, 교육을 산업으로 확장시켰듯이, 개인의 역량은 시간이 축적될 때 비로소 구조가 된다.

나는 곧 비달 사순의 나라, 영국으로 향한다. 한 달간 학생들과 함께 머물며 다양한 현장을 체험할 예정이다. 사순이 만들어낸 '설계된 구조'라는 사고방식이 영국 사회 곳곳에 어떻게 스며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가 어떻게 전통과 혁신을 공존시키는지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

머리를 자르는 방식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가위의 각도는 곧 사고의 각도다. 영국에서의 한 달이 또 다른 '커트'가 되어, 나의 생각과 우리 학생들의 시야를 새롭게 다듬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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