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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소라기에도 부끄러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이다. 최근 일반 공직자도 아닌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형편없이 허술하기 이를 데 없이 대책 없는 기관임이 폭로됐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이른바 '사기탄핵'이다. 국회는 탄핵사유로 내란혐의를 강조하여 탄핵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소속 여러 의원들도 내란혐의가 없었다면 굳이 탄핵 가결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헌법재판소 심리과정에서 내란혐의가 빠져버렸다. 그럼 탄핵사유에 중대한 변경이 있으므로, 헌재는 마땅히 사건을 각하하여 국회로 돌려보내 다시 의결하게 했어야 한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냥 탄핵심판절차를 진행했다.
헌재는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오해하여 국회가 주장하지도 않은 '국회의 헌법재판소 구성권'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그것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침해했다는 '궤변'스러운 판단을 했다.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탄핵 피청구인 대통령의 증인에 대한 직접 질문을 불허하는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고 소송지휘권을 남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바르고 공정한 절차가 존재하고 그 절차에 따라 제대로 수행된다면 그 결과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공정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절차적 정의다. 편향된 주관에서 벗어나 최대한 공정한 입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여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그 기초가 되는 '절차적 정의'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무엇에 쫓기고 있나? 이런 조잡한 기관을 우리 세금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가.
공수처는 영장을 쇼핑하고, 경찰과 검찰은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 앞장서며, 법관과 재판관은 개인적 이권과 특권을 강고히 하기 위해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결정과 판결을 내린다. 국민들의 사법 행정에 대한 분노지수는 전에 없이 비등하고 있다. 이러다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에서, "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은, 법률가를 모두 죽이는 거야(The first thing we do, let's kill all the lawyers)"라고 할 정도로 법률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지는 않을지 두렵다.
◇ 잘못된 세금은 국가를 망하게 한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부터 1453년 5월 29일까지 2206년간 존속했다. 대략 기원전 27년에서 180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 일컫는 제국의 전성기는 명료한 세금제도와 공명정대한 사법제도,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김경준,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프랑스의 소금세를 일컫는 가벨(gabelle)은 매우 가혹한 세금이었다. 모든 국민은 1년에 7kg의 소금을 사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그 세금이 어떤 지역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가혹했는가 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아예 거두지도 않았기에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탈세가 적발되면 감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갤리선으로 보내지거나 바퀴에 깔려 죽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가벨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가벨은 프랑스 혁명의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에드 콘웨이, '물질의 세계', 이종인 옮김).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가혹하고 불합리한 세금은 상속·증여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상속세 완화 추진 방침을 밝혔다. 거대 야당 대표의 말이라 당연히 믿어야 할 것이지만, 반도체 산업을 살린다면서도 주 52시간 근로에 대한 예외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도체법, 기업을 살린다면서도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모순처럼, 오른쪽 신호를 켜고는 태연하게 왼쪽으로 가는 일이 흔하다 보니, 양치기 소년의 장난인가 싶다.
그는 상속세법을 고쳐 현행 '일괄 공제 5억원, 배우자 공제 5억원을 각 8억원, 10억원으로의 증액'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고세율 50%인 세율이 문제다.
한국 상속세는 황혼이혼과 가족 해체를 부추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체 이혼 건수가 감소함에도 남편과 아내가 70대 이상인 경우 이혼 건수 및 비중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4년 224건이던 것이, 2018년에는 449건, 2021년 629건, 2023년 682건에 달했다. 초고령 이혼의 원인은 '절세'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배우자 사망 시에는 남은 배우자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이혼 시의 재산 분할에는 증여세가 붙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위장이혼'을 적발하면 세금을 부과한다지만, 어쩌다 국가가 이혼 사유까지 조사하는 나라가 됐나?
◇ 기업 매각 또는 폐업 시까지 상속세 유예해야
기업 상속은 주식 승계를 의미하는데, 주식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현금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다. 주식 상속 그 자체는 미(未)실현 이익이라는 말이다. 미실현 이익에 60%의 세금을 매겨 그에 상당하는 현금을 내라는 것은 사업을 접고 기업을 처분해 세금을 내라는 말이나 같다. 기업의 연속성은 단절된다.
부모가 주식을 물려줄 때는 과세하지 않고 이후 후대가 그 주식을 팔아 실제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세금을 물리는 방식인 '자본이득세제' 도입이 시급하다. 일본에서도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에도 상속 증여세는 매각 혹은 폐업 시까지 납부가 유예된다. 획기적 조치 없는 상속세 개편은 미봉책일 뿐이다. 한번 법을 개정하면 수십 년이 또 속절없이 지나간다. 이런 나라의 젊은이, 기업인과 기업들에게 무슨 의욕과 희망이 있을 것인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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